소리의 통로

에스토니아 남동부 지역, Tartu라는 도시에서 버스로 40여 분 남짓 가면 다다르는 Mooste라는 마을에서 지난 10월 약 한 달간 머물렀다. 러시아와 근접한 국경 지역으로 주위에는 숲이 많은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마을도 숲도 꽤 조용한 편이다. (에스토니아는 숲의 면적이 국토 총면적의 70퍼센트에 달하고, 산숲보다는 평평한 지역의 숲이 일반적이다) 마을에는 한 개의 커피숍, 두 개의 슈퍼마켓, 학교와 우체국, 방앗간을 개조한 마을 극장과 시청, 몇 개의 워크숍 장소들이 전부이다. 이렇게 작고 그래서 아주 폐쇄적일 것 같은 시골 마을에 MoKs라는 인터내셔널 레지던스가 있다는 것이 좀 의외일 수도 있다. 이곳은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아티스트로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John Grzinich와 Evelyn Grzinich 부부가 운영하는 레지던스로 매년 15~20명 정도의 아티스트들이 머무르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왔다. 옛 농가를 조금씩 개조하여 현재의 외관을 갖추었는데, 이곳을 다녀간 아티스트들이 곳곳에 남긴 소소한 작업들은 내게 MoKs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작업을 했던 아티스트들은 매체에 한정되지 않았지만, 주로 소리, 환경, 사운드스케이프, 랜드스케이프, 건축, 커뮤니티아트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이었고, 나와 나의 동료 Dawn Scarfe외에도 오스트리아의 사운드아티스트와 아이슬란드에서 커뮤니티아트를 연구하는 리서처가 같은 시기에 우리와 함께 MoKs에 머물렀다.

나와 나의 동료 Dawn Scarfe는 대부분의 시간을 숲에 가고, 마을을 걸어다니고, 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를 관찰하는 일로 보냈다. 영국의 산림청에서 커미션을 받아 숲에 대한 작업을 3년째 해오고 있는 Dawn에게는 숲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 어느 날 밤은 함께 인근 Laho 호수 옆에서 야영하였는데, 숲에서 함께 관찰하고, 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비록 숲의 생태계가 분주한 여름에 비하면 아주 조용한 편이었는데, 숲속에서의 절대적 고요함을 경험한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John Grzinich는 내게 이곳의 분주한 숲 소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5월이 적기라고, 그가 녹음한 초여름 밤 숲의 소리를 4대의 스피커로 들려주며 알려주었다.) 그 외에 나는 지역의 기후가 소리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관찰하는 쪽으로 작업의 방향으로 잡고 마을에 남아 있는 콜렉티브 농장(일부는 폐허로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일부는 현재도 가동 중인)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워터 탱크의 소리를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흐르는 것과 흐르는 것들이 남기는 소리들을 쫓아다녔다. 흐르는 것은 늘 다른 모습으로, 거기를 지나고, 하나하나를 세거나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연결된 무엇이다. 숲과 빈 워터 타워는 모두 바람이 지나는 하나의 채널(통로)이었고, 그 안팎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의 잔향과 울림이 벌어지는 공간으로서 늘 다르게 관찰되었는데, 그 단서를 찾는 작업은 늘 흥미로웠다. 나는 주로 아침 7~9시 사이에 일어나 워터 탱크에 가서 소리 듣기를 즐겼다. 그렇게 아침에 녹음하고 작업실로 돌아와서 녹음한 것들을 들어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듣고, 녹음하려는 대상이 워터 타워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는 주위 환경의 소리를 워터 타워라는 통로를 통해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왜곡이나 증폭이라는 말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워터 타워는 내게 마치 이곳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 소리의 통로 같았다.

어느 날 아침, 늘 그렇듯 녹음을 하러 작업실을 나왔을 때 간밤의 서리가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고, 서리가 반사하는 빛으로 눈이 부셨다. 곧 해가 떠서 공기를 데우자, 서리가 녹아내려 한두 방울씩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녹음하는 워터 타워의 옆면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뾰족한 가시 같은 철 막대들이 많이 붙어있는데, 그 물방울들이 철 막대에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칼림바 연주와 같은 조건과 상황이 생겨났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녹음을 했고, 자연이 어떻게 자신을 펼쳐 보이는지, 그 앞에서 초조해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아카이브는 미세한 날씨 변화를 배경으로 워터 타워가 만들어내거나, 혹은 워터 타워를 통해 듣는 소리들로 채워졌다. 바람이 불지 않고 옅은 비가 내리는 날이나, 강한 바람이 부는 날, 서리가 녹아내리는 아침 같은 것이 그것들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 간다면, 이곳과 다른 어떤 것들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종종 나는 다른 기후,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른 소리 환경을 기대하곤 한다. 도심 속에도 변화하는 날씨의 흔적이나 기후가 인간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감지하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지만, 도시에서의 생활 자체가 그러한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기에, 그 감각적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고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연에 가까운 곳일수록 그 영향은 직접적이고, 날씨에 따른 풍광 역시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Mooste 날씨도 흐르듯 자주 변하였다. 햇빛이 비칠 때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낙엽들은 투명에 가까운 노랑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렇게 맑은 가을의 색깔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흐린 날에는 마을 전체가 더없이 우울한 회색의 덩어리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곳에서 여름, 가을, 겨울 세 개의 계절을 다 경험한 것 같았다.

내가 MoKs에 머물며 직접적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이끌린 감각들이 있다. 그때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죽어가는 것들이 남기는 감각들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본 인상적인 광경은 무수히 많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과들의 초현실적 풍경이었다. 올해 사과가 너무 풍년이라, 미처 수확하지도 않은 사과들이 그야말로 지천에 널려있었다. 우리도 오가는 길에 손을 뻗어 사과를 따다 먹곤 했고, 이웃들은 가끔 우리에게 사과 궤짝을 선물해 주곤 했다. 그것은 분명 풍년의 상징이었지만, 썩어가는 사과들의 풍경과 그 시큼한 냄새는 어딘가 기이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쉽고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숲에 들어찬 빽빽한 나무들. 기계톱으로 잘려 나간 소나무들이 쌓여있는 곳을 자전거를 타고 지날 때면 매우 진한 나무 냄새가 우리의 코끝을 잡아챘다. 그리고 비가 내리거나 습한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달팽이들 수십 마리들이 워터 타워 주변을 가득 메웠다. 나는 가능한 그것들을 밟지 않으려 했지만, 녹음을 하러 들어가려면 밟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순간 짧게 바스러지는 소리들과 그 뭉클한 느낌. 그렇게 상관없는 냄새와 소리와 모습은 때때로 소비에트 시절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콜렉티브 농장의 폐허들과 잔재들과 만나 내 안에서 증폭되기도 하였다.

MoKs 레지던스는 자체에서 아티스트들에게 부과하는 의무 사항이 많지 않아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꽉 짜인 일정이나 가시적인 네트워킹을 기대한다면 맞지 않을 수 있다. 대신 John과 Evelyn은 아티스트와 많이 대화하고 지역을 바라보거나 접근하는 다양한 관점과 맥락을 제안해 준다. 이렇게 레지던스 기획자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와 협력이 한 지역을 살피고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고 본다.

발행 정보·크레딧
  • 발행한 때

    2014.1.

  • 발행처

    아르코웹진